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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수의 극장에서 놀다]‘파탄의 인간관계’ 너머 일말의 희망…기대 이상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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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5 12:16 조회5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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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극장에 들어섰다가 의외로 기분 좋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 9일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난 <글로리아>가 그랬습니다. 포스터만 보면 뭔가 트렌디한 상업극 냄새가 솔솔 풍기는 듯해서 그다지 마음이 가지 않던 연극이었습니다. 한데 이 연극, 상당히 볼만합니다. 특히 희곡이 매우 탄탄하다고 느껴졌습니다. 자본주의의 첨단을 걷는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어느 잡지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2막과 3막에서는 공간적 배경이 LA 등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그 도시가 어디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연극은 비정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이기적인 동물들의 이야기,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완전히 포획된 21세기 인간들의 살벌한 이기주의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극중 인물들은 신랄하고 시니컬한 대사들로 서로를 물어뜯고, 내 성공을 위해서라면 남의 뒤통수를 치는 일쯤이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스스럼없이 드러냅니다. 이 연극은 그렇게 ‘관계의 파탄’을 그려냅니다. 

물론 모든 등장인물이 그런 것은 아니지요. 예컨대 ‘글로리아’는 사람들과 사교적으로 잘 어울리지 못하긴 해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저 평범한 우리의 이웃입니다. 플로리다 태생의 그는 책도 많이 읽고 뜨개질도 잘합니다. 늘 도시락을 싸서 출근하는데, 동료에게 같이 먹겠냐고 권하기도 하는 여성입니다. 하지만 잡지사 사람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직장에 다니는 그에게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뒤에서 손가락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글로리아는 외로움과 공허감의 벼랑으로 내몰립니다. 

연극의 1막은 직장 안에서 벌어지는 수다와 질시, 손가락질과 험담으로 좀 시끄럽지요. 배우들의 대사는 속사포처럼 빠릅니다. 때로는 그 빠른 대사를 처리하느라고 말의 맥락과 리듬을 놓치는 배우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이 연극은 한 차례 ‘충격요법’을 시도하면서 또 다른 국면의 드라마로 접어듭니다. 스포일링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기는 어렵지만, 2막과 3막에서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관계의 파탄’이 회복되기는커녕 오히려 심각해집니다. 그래서 3막에 등장하는 ‘로린’의 대사, “나는 좀 더 존재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아프게 다가옵니다. 연극의 전반부에 등장하는 비주류의 표상이 글로리아였다면, 후반부에 등장하는 비주류는 로린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연극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등장하는 로린의 그 말은 작가가 애써 심어놓은 일말의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미워하고 이용해 먹는 파탄의 관계가 아니라, 신뢰하고 배려하는 관계 말입니다. 

미국에서 한창 각광받는 극작가인 브랜든 제이콥스-젠킨스가 쓴 연극입니다. 그는 애초에 배우를 지망했지만 흑인이어서 겪었던 캐스팅의 한계 때문에 극작으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글로리아>는 매우 신랄하고 시니컬한 대사로 사람들의 뻔뻔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연극이지만 작가의 시선 자체가 시니컬하지는 않습니다. 젊은 작가가 쓴 드라마임에도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솜씨가 빼어납니다. 한국 공연은 김태형이 연출했고 이승주, 손지윤, 임문희, 정원조, 오정택, 공예지가 출연합니다. 오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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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08102125015&code=960313#csidx00ccaf47a2d27e5ad9655fdaee70bc0 onebyone.gif?action_id=00ccaf47a2d27e5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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