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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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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요시사신문 작성일18-02-12 12:24 조회4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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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광림(본지 주필·대표이사)

 ​때 이른 추위에 여러 차례 강력한 한파가 휩쓸고 간 겨울 들녘은 아직 황량함 그 자체다. 눈 쌓인 언덕길에 옷 벗은 나무, 빈 둥지가 애처로운 그 우듬지의 끝을 매서운 삭풍이 훑고 지나가면 홀연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비단 혹한의 육체적 체감온도 때문만은 아니리라.

 

그래도 먼발치 밭이랑에 눈을 주어보면 싱그러운 청보리의 여린 새순이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고 있다. 어디 그뿐인가, 양지녘 담장 아래 다소곳이 눈꽃을 이고 피어오른 노오란 개나리꽃과 붉은 동백 한 송이. 봄의 전령과도 같은 이들의 활기찬 기지개를 보면 봄도 멀지 않았음이리라.

 

아직은 종종 귓불을 스치는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따사롭다. 이 설한의 계절에 저 따뜻한 햇살마저 우릴 외면하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혹한과 삭풍이 우리가 짊어지고 가야 할 인생의 짐이라면 햇살은 분명 지난 겨울 광화문에서 우리가 들고 부르짖던 그 촛불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느지막이 영화 ‘1987’을 관람했다. ‘화려한 휴가’ ‘변호인’ ‘택시운전사그리고 ‘1987’ 대통령도 눈물을 훔쳤다는 영화를 보는 내내 객석에서는 비명과 탄식들이 흘러나왔다. 국가나 충성이라는 궁색한 변명을 빌미로 무고한 청년이나 시민을 고문하고 학살한 군부독재정권의 만행은 30년이 흐른 지금도 청산해야 할 국가적 부채요 수치다.

 

문재인 정권 출범 300일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박근혜의 섭정, 시녀정치를 몰아낸 국민의 힘은 위대했다. 프랑스 시민혁명보다도 더 장엄하고 숭고했던 그날의 대국민적 합의를 현 정권은 흔들림 없는 초심으로 끝까지 안고 가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적폐청산을 기치로 숨 가쁘게 달려온 현 정권의 노정은 아직도 안팎으로 위태롭다. 핵폭탄을 머리에 이고 살얼음판을 걸으며 우리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험난하고 멀기만 하다.

 

박근혜와 MB를 비롯, 당시 정권에서 자행된 적폐청산은 시대적 요구요 책무다. 정치보복을 운운하며 필사적인 생존의 몸부림으로 발악하는 무리들의 뻔뻔함이 역겹다. 이 와중에 이재용의 석방은 판경유착과도 같은 재벌불패신화로 적폐청산에 찬물을 끼얹는 적신호다. 혹여 노파심에서 누차 강조하건데 만에 하나 용서와 화해를 빌미로 정치적 타협을 시도한다면 이는 국민적 배신과 역린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적폐청산 속도가 더딘 것도 우려스런 대목이다. 잔치도 늘어지면 흥이 줄기 마련이다. 지루한 청산작업은 회의와 분열을 야기할 수 있다. 가능한 한 신속하고 과감한 청산과 개혁이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국민과 나라를 바로세우는 유일한 해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포항 지진과 제천, 밀양의 대형화재 참사, 북핵과 경기침체로 대내외적 악재가 분출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상생의 해법 역시 국론의 통일과 결집이다. 개헌 또한 대국민적 합의와도 같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당략과 정치적 생존의 유치한 발상을 떠나 구국의 결단으로 임해야 한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북 단일팀 구성과 동시입장은 평화와 화합의 민족적 감동을 선물했다. 그런데도 극우세력의 반대시위와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으로 매도하고 폄하하는 홍준표의 국가모독적이고 정략적인 망언은 결코 용서할 수 없다. 평창올림픽 슬로건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에 걸맞게 남북이 화해의 물꼬를 트는 평창의 새로운 신화를 온 국민은 갈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바로 평창 그 후다. 평화를 볼모로 북에 끌려만 다닐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국력신장과 대안 마련, 외교적 해법에 진력해야 한다.

 

6·13 지방선거 역시 바른 정치를 정착시키는 시험대임을 잊지 말고 성숙된 정책대결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는 유권자의 적극적인 참여와 정치적 소신의 발현이 절실하다.

 

대통령과 현 정권은 지지율에 연연하지 말고 초심을 항심으로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것이 매서운 눈보라와 혹한을 무릅쓰고 촛불을 들었던 대다수 국민들의 준엄한 요구에 응대하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상원질의 참석에 몇 분 늦은 마이클 베이츠 영국 국제개발부 부장관의 사과성 몇 마디를 저급한 수준의 한국 정치인들에게 설 선물로 얹히고 싶다.

  "아주 중요한 질의의 첫 부분에 자리를 지키지 못한 결례를 범하게 된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 한다. 정말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나는 즉각 사임 안을 총리에게 제출하겠다."

 

 ‘이런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아.’ 영화 속 여주인공 연희의 짤막한 대사가 오래도록 뇌리를 파고든다. 그래도 오늘날 우린 장엄하게 산화한 그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이만한 자유를 쟁취하지 않았는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철저한 자성과 성찰의 주문과도 같은 역설적 대사 앞에 미안함과 숙연함이 절로 이는 날들이다.

 

늘 그랬듯이 설이라는데 무겁고 답답한 마음을 떨칠 수 없다. 하지만 설다운 설을 만드는 것도 우리 모두의 몫이다. 정담과 격려가 넘치는 포근한 설 명절이 되십시오.

                                                    <ckl00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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